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읍면소개 > 지명유래

봉수면 서득(西得)마을

작성자
관리자
작성일
4063
등록일
2003.08.29
읍면
봉수면
첨부

옛시절 가수(佳樹, 嘉樹)면 지역인데 한때는 신흥동(新興洞)과 서득동(西得洞)이란 지명으로 보림리에 속했다는 기록이 있다. 조선시대 역참제도(驛站制度)가 운영될 때 사근도(沙斤道)에 속했던 신흥역(新興驛)이 있었던 곳으로 서북으로 초계(草溪)의 팔진역(八鎭驛)으로 연결되었다. 신흥역에는 기마 2필과 복마 4필에 역리와 역노(역졸)가 35명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. 의령에는 두 곳의 역과 9개의 원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서득마을이 신흥역이 있었던 곳이라서 한때는 신흥동으로 기록된 문헌도 있다. 서득마을은 삼거리마을과 상암평, 하암평, 직금 등 네동네를 이루고 있지만 옛시절엔 짠디말(짠대말이라고도 함), 지금 덤들(웃덤들과 아랫덤들)이라고 불리워 온 곳이다. 짠디말은 역촌이라 말을 길러야 하기 때문에 널찍한 짠디 풀밭이 있어서 그런 지명을 썼다고 한다. 지금은 그냥 서득삼거리라 한다. 「지금마을」은 옛문헌에 지금제(地錦堤)가 있었는데 길이가 245척 넓이가 7척으로 정곡리(定谷里 :지금의 유곡면)소속으로 돼 있다. 제법 큰 제방과 함께 물이 좋았던 골짜기임을 짐작 할 수 있다. 그 뒤 옥녀봉 전설과 함께 풍수지리설 그리고 훗웅덩이(훗웅동)라 해서 골 깊숙한 곳에 있는 자연샘은 칠년대한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면서 산자락의 제법 높은 벼랑 밑에 있다. 이 동네서 나직한 산고개를 넘으면 유곡면 마장동리다. 그리고 상암평과 하암평 마을은 옛시절에는 웃덤들과 아랫덤들로 마을 옆 큰바위(덤) 때문에 덤들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또 한 이 지대는 온통 큰돌이 널려 있는 밭들이라 물을 대놓으면 금방 빠져 버리는 돌너드렁밭 이었다는 것이다. 그러고보면 덤들 즉 바위가 널려 있는 논밭이란 지명은 썩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. 이 덤들이란 고유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암평(巖坪)으로 했다. 그리고 웃뜸이라 상암평이고 아래뜸이라고 하암평으로 고쳐 쓰고 있는 것이다. 삼거리에서 지금쪽으로 쑥 나온 산줄기의 끝자락에 큰덤이 보이는데 수리덤이라 한다. 큰수리(독수리 또는 수리부엉이라고도 함)가 살았다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. 「직금마을」의 동구에는 엄청 크고 나이먹은 정지나무(정자나무)가 네그루 있고 그 옆에 조산(막돌탑)이 두곳이 있다. 나무는 동신목(洞神木)으로 받들면서 마을밖 나들이를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절을 하고 또 조산에 돌을 주워 얹고 있다고 한다. 그래서 동양재(東陽齋)란 큰 재실도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. 현재 삼거리마을은 27호, 상암평 7호, 하암평 8호, 직금마을은 27호가 살고 있으며 김해김씨가 21집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 박(朴)·설(薛)·전(田)·한(韓)씨가 7집이며, 이(□)·허(許)·황(黃)씨등이 너댓집씩으로 네동네를 다하면 80가구다. 직금에 허씨문중의 동양재(東陽齋)와 상암평에 선산김씨 재실인 영모재(永慕齋)가 있으며 하암평에 법화종의 미타암 절이 하나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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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담당 봉수면 총무팀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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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최종수정일 2023-01-18